애플의 성장 (경영방식)

애플의 경영활동의 전개추이를 시대별 변천과정으로 분석하며, 애플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였던 스티브 잡스의 성장과정과 경영이념, 그리고 경영전략 등에 대하여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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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기업연혁

 일자  내용
 1976.04  “애플 컴퓨터”창립
-스티브 워즈니악, 스티브 잡스, 로널드 웨인

(자본금-1,300달러)

 1976.04  애플Ⅰ컴퓨터 출시
 1977.01 “애플 컴퓨터(Apple Computer Inc.)”

라는 법인으로 주식시장 상장

 1977.03  애플Ⅱ-미 서부해안 컴퓨터 전시회(WCCF)

에 처음 소개

 1980.05  애플Ⅲ의 출시 및 대량의 리콜상황 발생
 1983.01  세계최초 GUI방식을 채택한 컴퓨터 출시 –

Lisa computer

 1984.01  Macintosh의 발매 개시
 1985.07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퇴사
 1991.07  Powerbook 170 출시
 1994.11  IBM과 Motorola와의 협력으로 파워

매킨토시 출시

 1996.02  길 아멜리오의 취임
 1997.02  맥 OS의 기반인 넥스트사와 넥스트스텝

운영체제 인수 (4억 3천만 달러)

 1997.07  스티브 잡스의 애플 경영복귀
 1997.11  Powerbook G3 및 애플 온라인 스토어

발표

 1998.05  일체형 컴퓨터 iMAC 출시 및 New 파워북

G3 출시

 2001.01  소프트웨어 “Mac OS 10” 발표
 2001.05  애플의 직영매장 “애플 스토어”오픈
 2001.11  아이팟(iPod)출시 및 아이튠즈 뮤직스토어

(iTMS) 오픈

 2002.01  아이포토(iPhoto) 프로그램 출시
 2002.01  아이맥(iMAC) 출시
 2003.06  PowerMac G5 출시
 2003.11  윈도우용 iTunes 발표
 2006.01  윈텔 프로세서 기반의 Macintosh 출시
 2006.02  맥 미니(Mac Mini) 출시
 2006.08  WWDC에서 맥 프로(MacPro),

Xserve 발표

 2007.01  “Apple Computer Inc.”에서

“Apple Inc.”로 사명 변경

 2007.06  미국 AT&T사와 독점계약으로 아이폰

(iPhone) 출시

 2008.10  휴대용 노트북 “맥북에어(MacBook Air)”

출시

 2010.05  태블릿 PC 아이패드(iPad) 출시
 2010.06  아이폰 4(iPhone 4) 출시
 2011.03  태블릿 PC 아이패드2(iPad 2) 출시
 2011.10  아이폰 4s(iPhone 4s) 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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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경영활동

– 1976년~1984년 : 창업 및 도약기

​프로그래밍 언어를 사용할 줄 아는 소수의 전문가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가 아닌 일반인들이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를 개발하는데 목표를 두었다. 애플의 사업 첫 해인 1976년에 ‘애플Ⅰ’ 제품을 바이트 숍(byte shop)에 150대를 납품하면서 10만 달러에 육박하는 매출을 올렸다. 또한 애플은 멋진 케이스와 키보드, 전원장치, 소프트웨어, 모니터까지 갖춘 일체형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다. 애플의 워즈니악과 잡스는 컴퓨터의 핵심인 운영체제(OS)에 대하여 중요한 결정을 하였다.

애플은 좀 더 나아가 신형 컴퓨터에는 소음이 없어야 된다고 생각하면서 컴퓨터의 핵심장치였던 팬을 없애기 위해 컴퓨터의 주 원천인 전원 공급 장치를 새롭게 개발하여 적용하였다. 그 결과‘애플Ⅱ’는 컴퓨터를 컬 때마다 매번 먼저 운영체제(OS)를 가동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없애고 자동적으로 운영체제를 가공함으로써 기술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들도 쉽게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도록 역점을 두었다. 그리하여 애플Ⅱ는 기존의 컴퓨터에서 보여주고 있는 부품세트(키트)가 아닌 최초의 컴퓨터로서 완전히 조립된 제품이었고 케이스와 키보드를 갖추고 있었으며, 사용자가 앉자마자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였다.

또한 애플은 1979년부터 일반 대중을 위해 작고 저렴한 컴퓨터를 개발하기 시작하였다. 애플이 새롭게 개발하려는 제품의 콘셉트는 “컴퓨터에 추가 장치가 필요없는 자급식 기기로서 컴퓨터 하나만 사면 다른 것은 필요 없는 장치이며, 사용자가 다루기 쉬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컴퓨터를 켜면 소프트웨어를 시동하거나 난해한 명령어를 입력하지 않고 곧바로 작업할 수 있는 컴퓨터였다. 그래서 애플은 최초로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방식을 채택한 보급형 컴퓨터를 개발하였으며, 그것이 바로 애플의 가장 혁신적인 업적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매킨토시(Macintosh)”이었다. 이는 종전의 키보드의 문자를 두드리면 컴퓨터가 그 문자를 화면에 띄우는 방식이 아닌 화면상의 아이콘을 마우스로 클릭하여 사용자가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발되었다.
애플은 1984년 1월 매킨토시를 출시하면서 새로운 광고 전략을 세웠다. 애플의 광고에는 제품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세련되고 멋진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운다는 전략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한 예로, 애플이 매킨토시를 발매할 때 전 미국이 열광하는 미식축구 축제인 ‘슈퍼볼’의 하프타임에 내보낸 광고 ‘1984’이다. 이 광고는 미국 전역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암흑의 지배자 IBM으로부터 사람들을 해방하는 ‘애플’이라는 이미지를 강조하였다.
애플은 광고 ‘1984’를 통해 ‘개인의 자유를 얻어야 세상이 달라진다.’는 주장은 젊은이와 디자이너들에게 널리 받아들여졌고, 매킨토시는 단숨에 애플을 대표하는 제품이 됐다. 또한 매킨토시는 ‘애플(Apple)’이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린 기념비적인 제품이 되었다. 매킨토시는 퍼스널 컴퓨터가 추구해야할 모습을 실현한 창조적인 제품인 동시에 시장을 독식하던 거대기업인 IBM을 추격해 발매 개시 후 불과 74일 만에 5만 대 라는 획기적인 판매량을 기록한 대히트 제품이기도 하였다.
애플은 매킨토시를 개발하면서 당시 퍼스널 컴퓨터의 기존 개념을 모조리 뒤엎었다. 애플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는 당시의 주류였던 가로 형을 부정하고 ‘가로 형이 아닌 세로형으로 가야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컴퓨터의 본체 크기도 큰 것을 당연시하던 분위기 속에서 ‘전화번호부 정도의 크기로 줄여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한편 애플은 신생기업의 불리한 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마케팅 분야의 전문가들을 기업 외부로부터 영입하여 기업의 마케팅 방향과 목표를 실행하였다. 먼저 광고 분야의 레지스 매키너를 설득하여 애플광고를 제작 의뢰하였으며, 마케팅 전문가인 마이클 마쿨라로 부터 경영자문 및 회사의 투자를 이끌어냈다. 또한 1983년에는 마케팅의 전문가이자 펩시의 최고경영자인 ‘존 스컬리’를 영입함으로써 애플의 마케팅 전략에 큰 영향을 주었다.

– 1985년~1996년 : 애플의 침체기

스티브 잡스는 1985년 5월 31일 이사회를 마지막으로 애플에서 퇴사를 했다. 애플의 창업자이자 퍼스널 컴퓨터 시장을 창조한 영웅으로 칭송받던 스티브 잡스였지만, 당초 목표치였던 200만대에 턱없이 부족한 25만대만을 판매하는데 그친 매킨토시의 실적부진과 평소 회사 동료들로부터 스티브 잡스의 독선적인 행동에 불만을 갖고 있는 세력들에 의해 쫓겨났으며 그 중심에는 존 스컬리가 있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을 떠난 후 복귀하기 전까지 애플에는 여러 명의 최고경영자들이 이끌었지만 번번이 실패를 거듭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먼저 스티브 잡스가 퇴사 한 후 가장 먼저 애플을 이끌었던 존 스컬리는 1983년 애플에 입사한 후 마케팅 분야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애플은 매년 막대한 제품개발비용을 투입하였지만 그에 비해서 결과물들은 형편없었다. 존 스컬리는 한때 ‘Aquarius’라는 CPU 개발에 거액을 투입하여 프로젝트를 시행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무런 소득 없이 프로젝트는 취소되었다.
1993년에 이르자 애플의 실적은 급속도로 악화되었으며, 주가 또한 몇 주 만에 3분의 2로 추락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존 스컬리는 이러한 애플의 적자를 줄이기 위해 애플을 두 개의 회사로 분사할 계획을 세우고, 하나는 소프트웨어 회사인 애플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담당하는 매킨토시 사업부 등으로 분리하려고 했으나 곧 최고경영자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존 스컬리가 퇴사한 후 애플의 최경영자에는 애플의 유럽지역 마케팅 책임자였던 마이클 스핀들러 이었다. 그는 최고경영자에 취임 후 강력한 구조조정을 단행하였다. 애플의 전체 사원 중 2,500명의 사원을 해고하였고 각종 임금인상을 취소하고 보너스를 삭감하였으며, 또한 회사의 경비를 줄이기 위해 그동안 무료였던 구내식당과 헬스장을 유료화 시켰다.
그리고 스핀들러는 한 자릿수로 떨어진 애플의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매킨토시의 운영체제인 맥OS를 모토롤라, 파워컴퓨팅, 유맥스 등의 다른 하드웨어 업체에 라이선싱 하는 초강수를 두었다. 즉, 다른 회사에서 제조된 매킨토시가 한 대씩 판매될 때 애플은 그들 회사들로부터 50달러씩을 받았지만, 만약 애플이 직접 제조해서 팔았다면 한 대당 500달러의 이익을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 1997년~2006년 : 애플의 부흥기

​1997년 7월 애플은 3억 7,750만 달러의 막대한 현금과 150만주에 이르는 주식으로 넥스트를 인수하고 스티브 잡스를 애플의 고문으로 영입하게 되었다. 애플에 복귀한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과감한 구조조정을 실행한다.
먼저 애플이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 중에서 수익이 나지 않는 프로젝트는 과감히 포기하는 결단을 내렸으며, 그 결과 이전의 50여개가 넘는 프로젝트 중 단 10개의 프로젝트만이 회생할 수 있었으며, 또한 제품의 라인업도 간소화하는데 착수하였다. 당시 애플은 컴퓨터뿐만 아니라 프린터, PDA, 디지털 카메라, 모니터 등 40여가지가 넘는 제품들을 만들고 있었다.
즉, 애플은 같은 컴퓨터 라인업에서도 가격과 성능을 달리한 수많은 모델들을 양산하고 있었으며, 각 컴퓨터들 간의 차이를 설명하지 못할 정도로 특징이 없는 제품들을 이름만 달리해서 수십 개씩 내놓았다. 스티브 잡스는 이를 과감히 4가지의 제품군으로 압축하였다. 우선 컴퓨터의 고객층을 전문가와 일반 소비자로 나누고, 이들 고객에 맞는 데스크톱 컴퓨터와 휴대용 컴퓨터를 공급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와 같은 스티브 잡스의 “선택”과 “집중”의 경영방식은 애플을 다시 회생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애플은 1997년 마지막 분기동안 4,500만 달러와 1998년 회계연도의 3억 900만 달러라는 수익을 창출하였다.
또한 애플은 제품의 제조생산과정에 대한 과감한 아웃소싱(Outsourcing)전략을 통하여 제품의 회로기판에서부터 완제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산과정을 외부업체에 위탁하였으며, 부품 공급업체들에 대해서는 엄격한 규정을 적용하였다.
한편 1998년 초 애플은 지나치게 많은 부품의 재고보유기간과 각 생산 공정의 기간을 단축하기 위한 구조조정을 실행한다. 그리하여 애플은 컴팩의 조달 및 공급망 관리자인 팀 쿡을 영입하여 그로 하여금 업무를 맡겼다.
팀 쿡은 애플의 핵심 부품 공급업체를 100곳에서 단 24곳으로 줄였으며, 공급업체들에게는 애플과의 거래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이전 보다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해야했으며 대부분의 공급업체들은 애플의 공장 옆으로 이전하는 현상을 보이기도 하였다.
또한 팀 쿡은 애플의 부품 창고 19개 중 10개를 폐쇄했으며, 이는 제품을 쌓아둘 공간을 없앰으로써 재고량을 줄인 수 있었다. 그리하여 애플은 1998년 9월 무렵에는 2개월분의 재고를 2일분의 재고 보유기간으로 단축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컴퓨터의 제조공정도 4개월에서 2개월로 단축하였으며, 이 모든 조치 덕분에 애플은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컴퓨터를 한 대, 한 대 생산할 때마다 최신의 부품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애플은 수주를 받은 당일에 전체의 75%를 출고할 수 있게 되었으며, 세계적인 시장조사기관인 AMR 리서치에 따르면 2007년도에 도요타와 월마트를 제치고 노키아에 이어 세계2위의 고효율을 기록하였다.
한편 1999년에는 또 하나 발상의 전환으로 투명케이스를 적용한 ‘아이맥(iMAC)’을 선보였으며, 특히 다섯 가지의 색상(핑크, 노랑, 블루, 초록, 자주색)을 선보이면서 소비자들의 선택의 폭을 넓혔다. 이는 누구든지 플러그만 꽂으면 작동되는 컴퓨터였으며, 그 결과 출시된 지 1년 만에 200만대가 팔렸다.
2001년 5월에는 미국의 버지니아 주의 대형 쇼핑몰에 ‘애플 스토어’가 문을 열었다. 애플 스토어는 기존의 컴퓨터 매장과는 달리 애플의 주요 제품들을 중심으로 매장을 구성하였으며, 이는 소비자들이 애플 제품들을 직접 체험해봄으로써 하나의 ‘디지털 허브전략’으로 활용하였다. 이와 같은 애플의 디지털 허브전략은 애플 스토어의 성공을 이끌었으며, 그 결과 최초의 매장이 문을 연지 10년만인 2011년 현재 전 세계의 애플 스토어의 매장 수는 317개 이며, 매장 한 곳당 평균 방문자 수는 일주일에 1만 7,600명이고 평균 수입은 3,400만 달러이며 2010년 회계연도의 순 매출 총액은 98억 달러에 달할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 2007년~현재 : 성장기 및 현재

​2007년 1월 애플은 기존의 컴퓨터회사라는 이미지에서 디지털 종합가전 회사로의 이미지로 탈바꿈하기 위해 회사명을 “애플 컴퓨터(Apple Computer Inc.)”에서 “애플(Apple Inc)”로 변경하였다. 그리고 전 세계의 휴대전화 시장에서 1%의 시장점유율을 목표로 2007년 6월에 스마트폰인 “아이폰(iPhone)”을 출시하였다. 아이폰은 휴대전화시장에서 “스마트 폰(smart phone)”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냈으며, 스마트 폰 시장에서 앞도적인 성장을 지속해왔다. 그 후 애플은 지속적으로 아이폰의 성능을 개선한 후속 제품들을 출시하면서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오고 있다.
한편 2008년에는 전 세계에서 가장 얇고 가벼운 노트북 컴퓨터인 “맥북에어 (Macbook Air)”를 출시하면서 얇고 가벼운 노트북 시장을 선도하였다. 그리고 2010년 5월에는 태블릿 PC인 “아이패드(iPad)”를 출시하면서 기존 컴퓨터시장의 틈새시장을 공략함으로써 전 세계의 소비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으며, 전 세계 태블릿 PC시장을 선도하는 제품으로 성장하였다. 또한 아이패드는 기존의 전자출판시장, 휴대용 미디어시장, 게임시장, 컴퓨터 시장, 무선인터넷 시장, 교육시장 등에서 변화를 가져오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이와 같이 애플은 휴대전화시장에서부터 시작해서 태블릿 PC시장에 이르기까지 시장을 선도하는 큰 업적을 이루어왔으며, 지속적인 혁신을 통한 성장을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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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기업문화

미국의 기업들은 ‘오프사이트 미팅’을 자주 연다. 즉, 관련 사원들이 일상 업무에서 벗어나 호텔 등에서 하루 종일 회의를 여는 것이다. 애플도 여느 미국의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오프사이트 미팅’을 자주 열었다. 그러나 애플의 기업문화에는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의 DNA가 뿌리 깊게 배어있다. 스티브 잡스의 진정한 능력은 애플 사원들의 참신한 아이디어와 열정을 신제품 개발에 쏟아낼 수 있도록 이끈다는 것이다. 애플의 직원들은 부서사이의 장벽을 넘어 서로가 서로를 잘 알고 있다. 프로젝트에 관여하는 사람은 물론 사내에서 다른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경우에도 필요한 업무라면 거리낌 없이 머리를 맞대며 고민하는 기업문화가 정착되어 있다. 이와 같이 애플의 기업문화는 다른 부서의 사람과 명함을 교환하는 일본의 대형 제조회사와는 전혀 다르다. 애플은 직원들뿐만 아니라 경영자도 사내 커뮤니케이션에 적극적이어야 했다. 생전에 스티브 잡스는 사내를 찾아다니며 일반 직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또한 애플의 평직원들은 토론이나 대화의 상대방이 스티브잡스라 해도 스스럼없이 반론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평직원들의 반론이 정당한 반론인 경우에는 스티브 잡스 스스로도 그 뜻을 수용하기도 하였다.

한편, 애플의 직원들은 좋은 아이디어나 문제 해결방법이 떠오르면 그 즉시 동료들에게 이야기 하는 것을 아주 당연하게 여긴다. 회사 또한 직원들의 그러한 대화를 존중하는 문화를 갖고 있다.

스티브 잡스는 직원들이 제시한 아이디어들을 충분히 검토하고 나서 그것이 회사의 사명에 맞고, 도전할 의미가 있는 것이라면 무리수를 두더라도 과감하게 도전할 가치가 있다고 했다. 또한 우수한 직원들이 모여 있는 회사라면 언뜻 불가능해 보이는 과제라도 토의를 거듭하며 해결책을 찾아내기 마련이다.

애플의 사원들은 개성이 넘친다. 상사의 명령이니까 어쩔 수 없이 따르는 일본의 직원들과는 정 반대에 있다. 실력에 자신이 있는 기술자일수록 자기주장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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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의 기업가적 활동

– 경영 이념 : 고정관념을 뒤집어라. 무슨 일이든 되게 하라. 완벽한 제품을 만들어라. 불가능한 것도 가능하게 하라.

 

​- 엔드 투 엔드 전략

– 경영 전략

① 마케팅 전략 : 체험 마케팅, 신비주의 마케팅, 고객창조 마케팅

② 인사관리 전략 : 우수한 인재 채용, 인재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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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성장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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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경영 이념

① “고정관념을 뒤집어라.” : 퍼스널 컴퓨터는 ‘가로 형이 아닌 세로형으로 가야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의 본체의 크기도 ‘전화번호부 정도의 크기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당시의 당연시 되었던 본체의 크기를 획기적으로 줄였다. 한편, 스티브 잡스의 이러한 원칙은 2001년 휴대용 음악플레이어인 ‘아이팟’을 개발할 당시에도 적용되었다. 그는 편리한 인터페이스와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고급 패션 브랜드에 영향을 미쳤으며, 자동차 오디오 시장에도 변화를 일으켰다. 이러한 대히트작인 ‘아이팟’을 개발할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엔지니어들에게 ‘최대 세 번의 클릭으로 모든 조작을 가능하게 하시오.’라고 말하
면서 조작성의 간소화를 강하게 요구하였다.

② “무슨 일이든 되게 하라.” : ‘애플Ⅰ’을 개발할 당시 스티브 잡스는 무슨 일이 있어도 조용한 컴퓨터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본체 전원을 설계할 수 있는 기술자를 ‘아타리’ 동료 중에서 찾았다. 기술자는 하루 200달러의 보수를 요구했으며, 스티브 잡스는 전원장치설계를 맡겼다. 기술자는 몇 주 동안 주말도 없이 신형 전원장치의 개발에 몰두했으며, 마침내 크기도 작고 가벼우며, 발열도 적게 발생하는 스위칭 전원을 완성했다.
이로서 애플은 작은 컴퓨터 본체와 팬이 없는 조용한 퍼스널 컴퓨터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잡스의 집요함이 전자기기 세계에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또한 스티브 잡스는 새로운 신제품을 출시할 때마다 소비자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그의 엔지니어들을 독려하기도 하였다. 때론 스티브 잡스는 엔지니어들이 맡은 업무가 기한 내에 완성되기 어려운 상황일지라도 그들을 다독이면서 열정적인 업무를 수행하도록 이끌었다.

③ “완벽한 제품을 만들어라.” : 스티브 잡스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부분에까지 완벽주의를 집착했다. 그는 애플의 초창기에서부터 모든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 있어서 소비자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까지 깔끔하게 처리하는 것을 강조하여 왔다. 실례로, 1977년 애플은 미국 서해안 최초로 연린 대규모 트레이드 쇼인 “웨스트 코스트 컴퓨터 페어”에 참가했을 때의 일이었다. 애플부스에 전시해 놓은 애플Ⅱ의 모습은 실로 아름다웠다. 깐깐한 스티브 잡스가 그냥 넘어갈리 없다는 것을 아는 엔지니어들은 애플Ⅱ의 외관을 열심히 사포로 문지르고 페인트도 다시 칠할 정도로 말끔하게 완성했다. 그런 애플Ⅱ의 제품을 본 소비자들은 아름다운 케이스에 매료된 것뿐만 아니라 애플Ⅱ 케이스 안에 가지런히 들어 있는 62개의 칩과 IC를 꽂은 메인보드, 거기에 덧붙여 깔끔하게 처리된 납땜 라인을 보고 감탄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애플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까지 세심하게 처리한 스티브 잡스의 완벽주의 원칙은 놀랍게도 오늘날 애플의 성장 원동력이 되었다.

④ “불가능한 것도 가능하게 하라.” :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경영할 때마다 넘치는 투지와 함께 상대방을 설득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 이는 스티브 잡스 자신의 강한 자기 신뢰는 타인에게도 ‘나를 믿고 앞으로 나아가자.’라는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스티브 잡스는 현장 엔지니어들에게 항상 가혹한 요구를 했다. 매킨토시를 개발할 때도, 디스플레이 일체형의 히트 모델인 ‘아이맥’을 개발할 때도, 그리고 ‘아이팟’을 개발할 때도 마찬가지 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불가능하다.’고 혀를 내두를 만큼 높은 수준에 도전할 것을 요구하며 그들의 한계까지 몰아붙인다. 이는 성공한 당사자들조차 ‘내가 이걸 해내다니’하고 놀랄 만큼 많은 일을 시킨다. 이러한 스티브잡스의 경영이념은 홍보 전문가였단 레지스 맥키너(Regis Mckenn a)나 펩시의 전CEO이었던 존 스컬리와, 애플에 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던 돈 밸런타인을 설득하는데도 효과를 발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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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경영 전략

 

– 마케팅 전략

① 체험 마케팅 : 애플 체험센터, 애플 스토어, 지니어스 바

② 신비주의 마케팅 : 스티브 잡스는 신제품을 개발할 때부터 최종단계까지 철저히 비밀에
붙였다가 깜짝 공개하는 ‘신비주의 마케팅’을 활용하였다. 애플의 신비주의 마케팅은 언론이나 마니아들의 궁금증을 증폭시켰다가 신제품발표 순간에 깜짝 놀라게 하는 방법이었다. 애플은 신제품을 발표할 때 언론사 기자들을 모아놓고 CEO가 직접 프레젠테이션을 함으로써 홍보효과를 극대화 하였다. 스티브 잡스는 파격적인 방식을 통해 언론과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이는 애플제품에 대한 신비주의를 통해 호기심을 자극하고 홍보효과를 극대화 하는 과정으로 이어졌다. 애플의 PR부서는 제품발표 몇 주 전에 언론과 VIP들에게 초대장을 보낸다. 그들의 초대장에는 ‘특별한 이벤트’라는 제목과 시간, 장소만 적혀 있을 뿐, 그 제품
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언급이 없다. 그러면 블로그와 언론에서는 스티브잡스가 이번에는 과연 무엇을 내놓을지에 대해 여러 가지 추측을 하게 된다. 이 추측과 소문은 입소문을 타고 더욱 무성해져서 사람들의 호기심은 하늘을 찌르게 된다.

③ 고객창조 마케팅 :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기획하고 만들어 내는 혁신, 즉, 새로운 아이디어와 고객 니즈가 만날 때 창조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애플의 고객창조 혁신의 마케팅은 ‘감지’, ‘아이디어 발상’, ‘스토리텔링’, ‘개발생산’, ‘마케팅’ 등의 다섯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 엔드 투 엔드 (End to end) 전략

애플은 전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하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동시에 생산하는 회사이다. 이러한 엔드 투 엔드(End to end)의 경영방식은 오늘날 애플이 전 세계적으로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스티브 잡스는 컴퓨터가 진정 위대하려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밀접하게 연결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애플의 엔드 투 엔드 전략은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퇴사하고 다시 복귀하기 전까지의 기간 동안에는 시행되지 않았으며, 그 결과 애플은 최악의 경영실적을 보이면서 창업이래로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가 다시 애플에 복귀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것은 매킨토시 호
환 제품 생산을 중단하는 것을 시작으로 다시 엔드 투 엔드 경영방식을 고집하였다.

– 인사관리 전략

스티브 잡스는 기자들로부터 ‘가장 혁신적인 기업의 경영자로서 애플은 어떻게 혁신을 일으키고 있느냐’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 편이다. 그러한 기자들의 질문에 스티브 잡스는 ‘혁신은 연구개발비의 액수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돈의 문제가 아니지요. 문제는 당신이 어떤 인재를 보유하고, 그를 통해 어떻게 혁신을 이끌어낼 것이며, 여기에 얼마나 혁신을 이루어내느냐 하
는 것’이라고 대답하곤 한다. 즉, 애플이 혁신을 지속적으로 일으킬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전 세계에서 모여든 우수한 인재들이 자신의 회사가 ‘혁신’에 가치를 두고 있다는 것을 지각하고 그 기대에 부응하고자 항상 혁신을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궁리했기 때문이었다.

① 우수한 인재채용

② 인재관리 : 스티브 잡스는 항상 최고의 인재들과 최상의 상태에서 일했다. 스티브 잡스는 부하직원들에게 언제나 최고일 것을 요구하고 그와 같이 일하려면 24시간 내내 집중력을 유지하여야만 했다. 또한 스티브 잡스는 직원들을 다루는데 있어서 “과도한 칭찬”과 더불어 때로는 직원들의 자존심을 건들이면서 그들의 의욕을 이끌어내는 방법을 사용해 왔다.

– 현장주의적인 경영 : 그는 항상 엔지니어의 책상 옆으로 성큼성큼 다가가서는 상대방의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렇게 하면 돼’라는가, ‘이렇게 하면 사용하기 편해지지 않을까?’와 같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는 바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이때 스티브 잡스가 한 말에 즉시 정확하게 대답하지 못하면 냉담한 어조로 ‘자넨 뭘 위해 일하고 있는 건가?’라고 내뱉는다. 이러한 상황이 두려워서 잡스와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을 이용하는 직원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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